내가 널 사랑할 수 밖에 없는 10가지 이유 01/22

1. 정태의는 일레이가 출장에서 돌아오는 날이면 어김없이 시간에 맞춰 눈을 뜬다. 설령 그게 새벽이라 하더라도. 잠을 깊게 자는 태의가 알람을 맞추지 않고도 어떻게 깨어날 수 있는지 태의도 정확히 알지 못한다. 비척비척 일어난 태의가 일레이에게로 향하면 일레이는 태의의 눈가에 말 없이 입맞추고는 잠에 취한 태의를 안고 방으로 향한다.
2. 리타와 카일은 매일 아침 반나체로 집안을 휘젓고 다니는 일레이와 태의를 마주한다. 저택 안에서 편한 옷차림이야 이해할 수 있다고 해도 온 몸에 난 이빨자국과 키스마크를 마주하는 건 매번 당혹스럽다.
3. 정태의는 일레이에게 종종 어린시절 이야기를 해줬다. 집 근처 공터에서 숨바꼭질을 하다가 실내화 주머니를 잃어버렸던 이야기, 떡볶이가 유독 매웠던 초등학교 앞의 작은 분식집이나 아파트 근처의 상가에 딸려있던 태권도 학원 같은 것들. 형인 정재의를 대신해 납치 당했던 이야기를 했을 때 일레이는 태의 몰래 재의를 다시 만난다면 그의 생명에는 지장이 없을만한 위해를 가할 계획을 세웠다.
4. 일레이는 태의보다 한국에 자주 방문한다. 일을 처리한 후에는 피에 젖은 장갑을 태우고 깨끗이 손을 씻고는 태의의 어린 시절의 자취를 쫓아가 본다. 태의가 말해주었던 분식집은 아직 그 자리에 있지만 일레이는 멀리서 지켜보기만 할 뿐이다.
5. 정태의는 일레이가 주는 한국 음식을 좋아한다. 가끔 고향의 맛과는 동떨어진 맛이 난다고 해도 “으음, 내가 알던 맛이랑은 좀 다르네.” 하고 중얼거릴 뿐 전부 먹어치운다. 일레이는 매운맛에 익숙하지 않고 단 맛을 즐기지 않지만 태의가 주는 음식이라면 아무런 불만 없이 받아먹는다.
6. 정태의는 일레이의 ‘나는 지금이 지옥 같은 걸’이라는 말을 제대로 이해하게 되었다. 일레이가 부상을 당해서 돌아올 때마다 심장이 바닥에 처박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건 이토록 아픈 일이다.
7. 정창인은 여전히 태의가 걱정이다. 하필이면 리그로우 가의 둘째를 속수무책으로 사랑하는 조카를 생각하면 가슴 한켠이 답답해질 때도 있지만 어쩌랴, 삶은 운명이 이끄는 대로인 것을.
8. 일레이는 이따금 악몽을 꾸지만 태의에게 알리지 않는다. 태의는 일레이가 악몽을 꾼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지만 굳이 들추려 하지 않는다. 아무리 빠르게 달려도 피할 수 없는 죽음이 있음을 안다. 죽음 뒤에 다음 세계가 있다면, 그는 찬란하지 못하리라는 것 또한 알고 있다. 그들은 구원을 바랄 만큼 나약하지 않다.
9. 일레이는 온전히 정태의의 것이다. 정태의는 언제건 일레이의 편이다.
10.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건 이토록 아름다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