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가 온전히 흙이 될 때까지 난 또 뜬눈이야 11/05

미안해, 난 너의 장례식에 가지 않았어 지하철 안에서 가슴이 뜨겁기는 했지만, 우리도 한번 이겨봐야 되지 않겠냐고 비분하기도 했지만

마감 뉴스가 끝나고 자리에 누워도 대학 본관 앞 흑백사진 속에 너는 아무래도 너무 어려

잘 가. 그대의 손이 얼굴이 가슴이 두 팔과 다리가, 아무것도 끌어안지 않고 아무것도 체념하지 않도록, 인간의 삶과 인간의 죽음을 체념하지 않도록

그대는 그곳에 있어 열아홉 살 그대가, 힘없는 그대가, 힘 없는 그대의 우주가 꽃을 피우고, 다시 또 어지러움 속에 사라져 버릴 때까지. 그대가 온전히 흙이 될 때까지 난 또 뜬눈이야.

 

허 연, 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