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우리 아름다움의 끝은 거기쯤 있었다 11/15

소매가 까매질 때까지 살았다 보증금도 없이 우리는 서로의 끝에 내려앉아,

입술을 깨물던 당신의 꿈에 광부들은 휘파람을 불지 않는다고 말해주는 것이 그날 나의 문명(文明)이었다 광부의 휘파람은 탄광 입구의 새 소리를 닮았다가 무너지는 갱도에서 새나오던 가스 소리를 닮았다가 혼들의 울음소리를 검게 닮아갔으니

손이 찬 당신이 물컵을 내려놓았다 번진 입술자국이 새가 날아오르기 전 땅을 깊게 디딘 발자국 같아, 아직도 살아남은 당신의 말들

가난하다고 말해오던 아픈 나의 이(齒)를 만져 오면서 내가 먹지 못한 음식들을 맞추어보겠다고 말해오던 가만히 먼 곳을 바라보는 일이 술을 깨는 데에 그만이라고 말해오던 다시 가난하고 심심하다고 말해오던, 나는 그 말들에 연을 묶어 훠이훠이 당기며 살았고

사실 우리 아름다움의 끝은 거기쯤 있었다 나는 당신과 잠시 만난 공중(空中)을 내 눈에 단단히 넣어두고 눈을 감았으니 버스를 타고 나간 사람을 정류장에서 기다리듯 하늘로 나간 당신의 말들은 하늘을 보며 기다려야 했으니

그러니까 소매든 옷깃이든 눈빛이든 여기보다 새까맣게

 

박 준, 연